코흘리개 시절부터 자우림을 좋아했다.
첫눈에 반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할머니와 주에 한번은 꼭 목욕탕엘 갔었다.
그날도 목욕탕에 갔다.
씻고 나와서 평상 같은데 앉아있었다.
아직 벌거벗은 채로.
작은 텔리비전에선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얼룩말 무늬의 원피스인지 치마를 입은 예쁜 언니가 중국집 발같은 치렁치렁한 귀걸이를 하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게 자우림에 대한 내 첫 기억이다.
그 이후로는 아마도 사촌언니의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제와서 이야기하지만,
나의 고약하고 은밀한 취미는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방에서 ‘새’를 듣는 것이었다.
무서움을 즐기면서.
가난했던 나는 이렇다할 덕질을 하진 못했다.
친구들이 물어다 주는 소식이나
인터넷으로 접하는 소식들이 전부였다.
노래방에서 열심히 자우림 노래를 열창하는 정도??
다행히도 내 친구들은
내가 자우림을 좋아하는데에 어떠한 이상함도 느끼지 못했다.
내 친구들은 나보다 더 유니크한 팀을 좋아해서 나는 양반인 축에 속했다.
오히려 부러워하는...?
그당시 자우림 다음 카페에 가입했었는데
거기에서 파는 배찌가 참 갖고 싶었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참 별것도 아니었는데...ㅎ
그 시절의 나는
언젠가 공연 한번 가봤으면,
아니,
cd 한장 가져봤으면 싶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20대 초반이 되었고,
다음 카페는 망한 것 같았다.
다른 커뮤니티에 가입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은 온라인에선 꽤나 재밌었다.
다들 키보드 워리어였다ㅋㅋ
암튼 이후에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공연을 단관할 수 있다는 공지를 보았다.
가야겠다 마음 먹었고 이름을 올렸다.
지금 내 기억으론 3만원이었던 것 같다.
이것이 나의 인생 첫 공연 관람이었다.
2층인가? 핵사이드에서 아주 신나게 관람했던 것 같다.
이날 그 구석에서 ‘언니 너무 예뻐요!’라는 사자후도 내봤다.
지금은 못한다....
이렇데 본격적인 덕질의 시작이었다.
커뮤니티에서 너무 활발했었을까?
자우림 매니저님께서 쪽지를 주셨다.
같이 맘마 먹자고.
이에 관한 에피소드도 기억에 나지만 귀찮으니까 스킵.
솔직히 이때 만나서 밥이 코로 들어갔는지 맛있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그냥 인생 최고조 흥분상태로 있다가 아무말이나 하며 앉아있었던 것 같다.
10년도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날짜가 기억난다.
그리고 그 날짜는 공교롭게도 자우림의 공중파 데뷔일과 같았다.
나는 참 운이 좋았다.
그 뒤로도 약 2번 정도? 더 이런 기회가 있었다.
대신 이 2번은 어쩌다 꼽사리 껴서 참석하게 된,
자우림은 내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모 어쩌겠나ㅎㅎ
그래도 나 자우림한테 3번이나 뭐 얻어 먹었잖음!
지금의 나는 공연은 무조건 올콘인 어른이 되었다.
CD도 전부 가졌다.
돌리지도 못할 LP도 샀다.
굿즈도 나의 자우림 굿즈 상자가 미어 터질 정도로 있다.
어느새 소유하는게 익숙하고 당연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나에게 자우림은 우주라고 생각한다.
매순간 공기를 의식하고 살지 않지만
없으면 죽는 것처럼.
자우림은 그런 존재다.
무념무상으로 잿빛의 마음으로 살다가
자우림 음악을 딱 들으면 느껴지는 그 감정은 설명할 수 없다.
위로, 위안, 이런 단어로는 부족하다.
이 우주에 혼자가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음악일 뿐인데도.
새 앨범이 나오는 텀이 좀 길다면 길지만,
나에겐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한 앨범을 충분히 만끽하려면 그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자우림은 내게 자랑스러운 덕질의 대상이었다.
인생의 롤모델이랄 것까진 아니지만,
자우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하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사회면에 실리지 않는,
평범하지만 보통은 아닌,
뭐 이런 사람?
내 덕질은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언제나 받기만 한 사람으로써
나도 언젠가 자우림에게 짜장면 한 그릇,
아니면,
아메리카노 한잔이라도 사드릴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그게 안 될 것 같아 열심히 앨범 사고 공연 가고그러긴 하지만..
그치만 이번 12월의 공연은
안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마음이 좀 그렇다.
아직 좀 그래.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자우림인 것은 변함이 없다:)
언니오빠들 무병장수해서 정규앨범 100집 갑시다!
얏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