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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견디지 못하는 사회

어느 날의 쏭 2021. 12. 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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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굉장히 이상한 내용들을 보게 되었다.

퇴근하고 게임하는 사람을 향해 '너만 놀아 너만'하던 광고,

주말에 좀 쉬고 싶은 남편의 마음은 몰라준 채 갑자기 내일 여행 가자며 타이어는 주말에도 수리할 수 있다는 광고,

어떤 영상에선 워라밸이어봤자 어차피 넷플릭스라며 워라밸이 잘못된 사상이라는 듯 이야기하던 장면.

쉼을 죄악시 여기는, 하다못해 쉬지 않고 무얼갈 해야한다는 저의를 담은 영상들이 몹시 불편했다.

 

 

 

 

 

욜로에서 소확행으로, 소확행에서 워라밸로 바뀌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걸 하자'란 생각으로 사는 나지만, 나는 욜로, 소확행, 워라밸이 불편했다.

은근슬쩍 '지금'을 위해 소비를 조장하고, '미래가 되어도 더 나은 삶은 없으니 네가 처한 현실에 만족하렴'이라고 떠드는 것 같아 싫었다.

 

 

 

 

 

나는 이 '워라밸'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향해 500억달러의 자산가 댄 페냐는 이렇게 말했다.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에게 워라밸이 있었을 까요? 아닙니다'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알 것 같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의 의미가 아니었을 까 싶다.

쉽게 말해,

공부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100점 맞길 바라는 학생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가 되기 위한 행동을 해야한다.

100점 맞고 싶으면 100점 맞을 만큼 공부해야한다.

하지만 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100점을 맞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나는 나 하나정도 먹여살릴 수 있는 일을 하며,

주말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다니고,

이런 여가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경제활동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것 뿐이다.

부를 축적하고 싶지도,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회의감을 느끼며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을 수 있는 경제활동과 삶을 누리고 싶을 뿐이다.

이런 희망사항이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행위이거나 이루기 힘든 대단한 희망사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희망사항이 나를 망치는 꿈일까? 그것도 아니다.

 

 

 

 

 

워라밸이란 말을 따져봤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것인데, 이 단어는 일과 삶을 분리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와 스티브 잡스에게 일과 삶이 분리 되어있었는 가를 생각해봐야한다.

솔직히 일론 머스크는 뭐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고, 스티브 잡스는 일이 곧 삶이고 삶이 일인 사람이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미쳐있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이었는지 잘하는 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싫은데 억지로 하는 일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일이 삶이고 삶이 일인 사람, 이런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대부분은 싫은 것도 좋은 것도 아닌 일을 하며 경제활동을 한다.

어쩌면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도 있겠다.

내가 아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ㅈ같은 근무환경에서도 자신이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며 일하고 있다.

이 최선을 다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겐 '워'가 '라'를 침범, 침해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왜 '워'가 '라'를 침범하려고 하는지를 생각해봐야한다.

그건 이 사회가 근로자를 '인간'이 아닌 '부품'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워라밸'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최소한의 장치인 것이다.

내가 '부품'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평일엔 부품으로 살아갈지언정 주말엔 돈이라도 쓰며 '내가 인간답게 살고 있다'느끼고 싶을 뿐이다.

TV 뉴스나 신문에 자주 나오지 않는가.

워를 강제했더니 자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물론 그 직장 내의 괴롭힘 등의 복합적인 문제가 있지만.)

워가 라를 침범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면서 모르는 척할 뿐이다.

부품이 필요한 사회에선 이 '라'가 싫을 뿐이다.

워라밸을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워'가 '라'고 '라'가 '워'인 사람들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그게 어떻게 '워'이겠나.

그러면서 어떻게 타인의 '쉼' 혹은 라이프스타일을 멋대로 평가 절하하며 죄악시 여길 수 있는 건가 싶다.

모두 무언갈 잊고 있다.

워라밸에서 라이프는 필수이지 선택이 아니다.

라이프가 있으니 워크가 있는 것이고, 워크가 있으니 라이프가 있는 것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

누군간 남들이 꺼려하는 일을 해야한다.

누군간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해야한다.

누군간 소중한 무언갈 지키기 위해 일해야한다.

이 '누군가'들도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워'만 있는 삶이 아닌 넷플릭스라도 볼 수 있는 삶이어야 한다.

워라밸을 죄악시 여기는 사람들도 나중엔 알게 될 것이다.

워에서도 행복감을 느끼고 라에서도 행복감을 느껴서

워를 늘리고 늘리다 결국 잡아먹히는 날에 알게 될 것이다.

자기가 사랑한 워가 더이상 그 행복감을 가져다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라가 있어야 그 워도 지켜지는 것이라는 것을.

좀 게으르면 어떤가.

내일부터 또다시 부지런해지기 위한 게으름인데.

 

 

 

 

 

쉬는 건 죄가 아니다.

그냥, 쉬는 거다.

나를 위해,

내일을 위해,

소중한 것을 위해,

잠시라도 쉬어야 한다.

 

 

우리는 좀 게으를 필요가 있다.